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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머·최루탄 국회…‘票로 심판’ 이 유일한 개혁 출구
폭력 행사땐 한목소리 비판
정작 선거땐 온정주의 반복

거대권력 靑 밀어붙이기만
與 조정능력 잃고 거수기役
극한대립속 폭력 악순환



“Whew! There is at least one legislative body more dysfunctional than the U.S. Congress.(휴! 미국 의회보다도 더 망가진 입법부가 최소한 한 곳은 있었네.)”

한국 정치가 최루탄 연기에 눈물 흘린 바로 그날(11월 22일), 미국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처리과정에서 벌어진 한국 국회의 폭력성을 풍자했다. 전날 적자감축을 위한 의회의 초당적 특별위원회가 합의 실패를 선언하는 등 미국 의회에 대한 불신감이 극에 달한 상황, 때마침 벌어진 한국 국회의 황당한 사건을 더 ‘엉망’이라고 조소가 담긴 표현이었다.

18대 국회가 해머와 공중부양, 최루탄 연기 속에 15일 회기 하루를 남겨두고 있다. 

18대 국회는 역대 어느 국회에서도 볼 수 없었던 날치기와 폭력의 수치스런 4년을 보냈다. 거대 여당은 다수결을 무기로 4년 연속 예산안을 날치기 처리했고, 야당은 야당대로 무법천지, 완력으로 맞섰다.

절반 가까운(44.5%) 초선들이 대거 진출하고서도 18대 국회가 정치 개혁은커녕 퇴행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뭘까.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독점적 권력관계가 국회 불통과 힘겨루기를 초래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첫손에 꼽힌다.

우윤근 법사위원장은 독점적인 거대 권력 눈치보기를 단연 앞세웠다. 우 위원장은 15일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권한이 주어져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국민 또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와 대화ㆍ소통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 면서 “여야 간 갈등이 노골화된 것도 따지고 보면 청와대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 탓”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대통령은 외교ㆍ안보 등 대외적인 권한만을 갖도록 하고 그 외에 내정에 관련된 권한은 의회가 선출한 총리에게 부여하는 분권형 대통령제 도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국회 내 해머 등장과 공중부양의 빌미를 제공했던 한ㆍ미 FTA 비준안과 미디어법, 예산안 등은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진두지휘하며 강행처리를 불사한 법안들이다.

새누리당 수도권의 한 재선의원은 “당 대표가 버젓이 있었지만 정권 초 당청관계는 일방적인 힘의 불균형이 지배했다” 면서 “이 대통령은 여의도 정치와 담을 쌓은 채 야당을 자극하는 발언으로 일관했다”고 말했다.

세계적 망신을 자초한 국회 파행에는 정파적ㆍ정략적 이해관계도 한몫했다는 지적이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주요 정당이 보수주의 일색이라는 협소한 이념 틀에 갇히면서 국회를 싸움꾼의 전당으로 만들었다”면서 “정책 차별화 대신 선명성 경쟁에만 몰두하는 지금과 같은 형태로는 폭력과 날치기의 병폐가 고쳐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개별 의원들은 협상을 하고 싶어도 당 지도부의 완강한 태도로 인해 협상테이블이 도루묵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민주통합당의 한 ‘협상파’ 의원은 “여야 간 대화와 타협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공천 기준에서부터 정체성을 들먹이고 나서니 누가 협상파를 자처하겠냐” 면서 “경제와 사회는 발전하고 있지만 정치는 날이 갈수록 후퇴하는 꼴” 이라고 비판했다.

대한민국 국회의 무한 폭력은 번번이 해외 토픽감이다. 나라 망신을 시킨 주역들은 그러나 여전히 국회를 활보하고 있다. 사진‘ 어글리 코리아’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린 18대 국회의 폭력 장면. 2011년 11월 22일 한ㆍ미 FTA 국회비준을 막겠다고 국회본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김선동 의원(위), 한ㆍ미 FTA 비준안을 처리하기 위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들이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실을 잠그자 민주당 당원들이 해머로 문을 부수는 장면.         [헤럴드경제 DB]


국회가 폭력을 일삼는 국회의원들에 대해 ‘제 식구 감싸기’ 식으로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 것도 폭력의 강도를 높이는 주요 원인으로 거론된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최루탄 의원’에 대한 사법처리를 여야로 떠넘겼고, 여야는 또 국회의장이 개입하지 않는 한 특별한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는 말만 반복했다.

국회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국민들이 학교폭력을 걱정하고 있지만 국회 폭력도 이미 도를 넘어선 지 오래”라며 “국회에서 아무리 폭력을 행사해도 처벌되지 않는 상황에서 누가 폭력행사를 두려워하고 걱정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 사회의 갈등유형 가운데 최악의 갈등이 빚어지는 곳이 여야가 모여있는 국회라는 지적이 거세다.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최근에 발표한 ‘우리 사회 갈등 유형별 심각성 분석’ 자료에 따르면 우리 사회 최대의 갈등은 여여 간 갈등이었고 뒤를 이어 부유층과 빈곤층의 갈등, 진보와 보수의 갈등 순으로 나타났다.

사건이 터졌을 때는 맹비난하다가 막상 선거일이 다가오면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는 유권자들의 태도도 달라져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해머를 등장시켜 국회를 치욕의 장소로 만든 문학진 민주통합당 의원, 공중부양으로 유명세를 치른 강기갑 통합진보당 의원, 운동권 시위 현장에서나 볼 법한 최루탄을 본회의장에 뿌려댄 김선동 통합진보당 의원은 19대 총선에 출사표를 던졌다.

무한 반복돼온 대한민국 폭력 국회의 운명은 결국 유권자들의 소중하고도 엄중한 한 표 행사에 운명을 내맡기고 있다. 


<양춘병 기자@madamr123 >
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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